따뜻한 단정함을 담아 꾸몄어요.
안녕하세요, 윤설희입니다. 패키지 그래픽 디자인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고, 취미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쓴 책은 2권입니다. 훗카이도 여행안내서와 한국의 산사에 관한 책이 바로 그것이죠. 후자의 책은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요.
지역과 공간을 주제로 하는 책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이라는 공간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이전엔 취향의 물건들로 둘러싸인 집을 추구했다면, 이번엔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집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완성된 것이, 지금의 한국 전통 건축물을 닮은 집이네요.
20년 된 평범한 집에, 단정함을
원래 저희 집은 20년이 넘은 평범한 아파트였습니다. 우물천장과 곡선이 있는 조명, 타일 바닥의 베란다, 주방 창문으로 집 내부가 훤히 보이는 구조로 이루어진.
이곳이 마음에 든 건 겨울에도 햇빛이 깊이 들어오는 남향집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근무하고 있는 회사와도 가까웠고요.
그래서 저는 이곳을 저의 보금자리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공과 스타일링을 하며 잡았던 집의 컨셉은, 따뜻한 단정함입니다. 블랙 컬러가 주는 무게감과 베이지 컬러가 주는 고요함. 그 둘이 만나 만들어내는 동양적인 여백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백을 살리고, 정제된 형태의 가구를 사용하면서 지루하지 않도록 꾸미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블랙 오크 컬러의 가구를 중심으로 모시 천이나 우리, 메탈, 우드 등 다양한 재질의 소품으로 다채로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럼 이제 집으로 들어가 볼까요?
집의 첫 느낌, 현관
현관에서 보이는 집 안의 모습입니다. 제가 키우는 고양이의 실루엣이 보이네요.
저는 현관을 고양이 화장실을 놓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모래가 바닥에 떨어져도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고, 중문을 통해 냄새 차단도 가능할 것 같았거든요. 위쪽으로 신발장을 달고, 그 밑 공간을 고양이 화장실과 재활용 쓰레기통을 놓는 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차 한 잔의 여유를 담은, 거실
이곳은 제가 다도를 즐기는 거실입니다. 밖에서는 늘 정신없고 바쁜 하루를 살기 때문에 집에서는 조용히 사색할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습니다.
거실은 독특하게 좌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TV를 잘 보지 않고, 거실이 작아 소파를 두면 답답해 보일 것 같아, 소파는 과감히 없앴거든요.
그렇게 한가운데에 러그가 깔려있고, 그 위의 타원형 원목 테이블이 무게감을 잡아주는 거실이 완성되었습니다. 베이지와 블랙이 대비되며 동시에 조화를 이뤄 고즈넉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납니다.
거실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 벽에 걸린 산사 그림입니다. 제가 직접 그린 그림인데, 동양적인 선과 여백이 살아있어 공간과 잘 어울립니다.
자세한 그림의 모습은 아래에 담아둘테니, 보고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산사」, 윤설희
마루를 만든, 베란다
그러다 떠올린 것이 마루입니다. 베란다 바닥 위로 한 층을 더 쌓아 단차를 주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로 한 거죠. 사진 속에서 단차가 보이시나요?
그러다 떠올린 것이 마루입니다. 베란다 바닥 위로 한 층을 더 쌓아 단차를 주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로 한 거죠. 사진 속에서 단차가 보이시나요?
마루로 새로 태어난 곳에는 다구와 향 관련 소품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종 이 앞에선 매트를 깔고 운동을 합니다. 짙은 우드 톤 바닥이라 명상을 하듯, 운동에 집중이 잘됩니다.
마루를 만들지 않은 쪽에서는 식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파릇한 식물들이 자연스러운 생기를 줍니다.
한식을 요리하는 사람의, 주방
다음으로는 집 안쪽으로 들어와 주방으로 가보겠습니다. 블랙 테이블과 의자로 구성된 다이닝 공간을 지나면 주방으로 이어진 통로가 보입니다.
제가 자주 요리를 해먹는 주방의 모습입니다. 되돌아봤을 때, 이곳을 구성하며 제가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은 작업대의 위치였던 것 같습니다. 반찬이 많은 한식 위주의 요리를 하다 보니, 넓은 작업대가 꼭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작업대를 넓게 쓰면서 세척하기가 용이하도록, 수전 근처로 위치를 변경했습니다. 다른 집들은 냉장고를 설치하는 곳에, 저희 집은 특이하게 작업대를 만든 거죠. 하지만 덕분에 요리를 하기도, 주방을 깔끔하게 유지하기도 편해져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원래 아일랜드 식탁이 있었던 곳엔 냉장고와 수납장이 들어왔습니다. 전통적인 오브제를 많이 가져다 두어, 전통적인 한국 집의 곳간과도 비슷한 느낌이 납니다.
이외에도 주방을 꾸미며 고려한 것은 수납장의 형태입니다. 제가 가진 조리기구와 테이블 웨어의 크기를 최대한 고려하여 세로로 긴 수납장과 가로로 긴 수납장을 구성했거든요. 덕분에 제 살림에 더 완벽하게 부합하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조리 스타일과 동선에 최적화된 고민 끝에 완성된 주방은 사용할수록 만족감이 남는 것 같습니다.
아늑한 설식당이 되는, 다이닝 공간
프라이빗한 한식 다이닝처럼도 보이는 다이닝 공간입니다. 주방과 거실이 이어지는 길목에 만들었지만, 조금 더 아늑하게 식사를 즐기고 싶어 커튼을 달아 공간을 한차례 분리해 주었습니다.
짙은 색이 주로 활용되어 전체적으로 어둡게도 보이는 다이닝 공간의 포인트는 블랙 펜던트 등입니다. 블랙 테이블 위로 떨어지며, 공간에 대비감과 어떤 신비로움을 주거든요. 또 모던하면서 동시에 옛것 같은 느낌이라 전체적인 인테리어와 잘 어우러지는 것 같습니다.
다이닝 공간에는 종종 정갈한 식탁이 차려집니다. 저는, 이곳을 ‘설식당’이라고 부르고 있기도 한데요. 오색찬란한 한식의 색감은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도 남습니다.
음식에서 ‘따뜻한 단정함’이 드러나는 순간은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다음 집들이를 기약하며
지금까지 저희 집의 중심 공간을 보여드렸는데, 재미있게 보셨을까요?
사실 이번 집들이에서는 지면이 부족해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제가 인테리어를 하며 깨달은 3가지 팁과, 다른 공간들까지. 이번에 담지 못한 이야기는 다음 번 집들이를 통해 들려드리려고 하니, 좋은 날에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집의 다른 공간이 궁금하신 분들은, 집꾸미기 페이지로 이동해 다음 편을 구경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집들이를 봐주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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