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맛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느라 입에 대본 적 없는 차를 마시리라.
남들이 재미없는 곳이라고 해서 가본 적 없는 거리를 걸어보리라.
다시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하리라.
소설 ‘아크라 문서’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첫 온라인 집들이를 발행했던 당시만 하더라도 ‘자신의 소유가 아닌 공간을 꾸민다는 것’이 조금은 쓸모없는 행동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공간을 꾸민다는 게 자신의 가치를 위한 쓸모 있는 일이라 여겨지는 모습들에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 이 집의 예전 모습도 살펴보기!
안녕하세요. 현재 두 권의 책을 출간했고, 올해 세 번째 책을 출간 준비 중에 있는 작가 김용재라고 합니다.
처음 온라인 집들이를 작성했을 당시만 해도 회사에 다니던 직장인이었는데, 몇 년 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네요. 지금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온라인 집들이를 다시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이렇게 쓰고 있는 걸 보면요.: )
집 정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은 12평 빌라예요. 지어진 지 20년 이상 되었습니다. 침실 1개 거실 1개, 화장실 1개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 집을 고른 건 못질과 페인트칠 등 직접 집을 고쳐 쓸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집주인 분과 협의를 잘 한끝에 얻은 인연이랍니다. : )
제가 인테리어를 하며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은, 나의 색을 드러내는 거였어요. 저는 집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공간에 표현된 개인의 색깔’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인테리어 전 사진!
변화된 공간을 소개하기에 앞서 인테리어를 하기 전 공간의 모습을 먼저 보여드릴게요. 이 집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인테리어 후 사진!
바로 이렇게 변했습니다. : ) 제가 이 집에 한 시공은 낡은 문에 페인트칠을 하고, 시트지를 붙이는 등의 기본적인 것들뿐이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탈바꿈을 할 수 있었던 건, 마음껏 ‘나의 색’을 담으며, 기본적인 시공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인테리어를 시작하기에 앞서 많은 분들이 주저하는 이유는 단연 ‘컨셉 잡기가 어려워서’인 것 같아요. 저 역시 몇 년 동안 인테리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막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곤 하는데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공간에 표현하고 싶은 것을 명확하게 잡기’라고 생각해요.
거실 – 소파 공간
제가 생각한 집의 컨셉과 이미지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몇십 년 전에 개봉한 ‘영화’ 나 ‘드라마’등을 참고하며 인테리어를 구상했어요. 꼭 몇십 년 전이 아니더라도 비교적 최근 개봉을 했지만 몇십 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상들을 참고하기도 했고요.
그럼 본격적으로 거실 인테리어를 보여드릴게요. 여기는 편안히 앉아 책을 읽고 쉬기도 하는 소파 공간입니다.
이 공간은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있으면서, 각각의 소품이 가진 색을 살려 밋밋해 보이지 않도록 꾸미려고 노력했어요. 그레이 색 1인용 소파를 중심으로 스툴과 조명을 배치하고, 식물을 그린 그림과 액자를 걸어 다채롭게 채워보았습니다.
소파 옆쪽에는 문이 있는데, 문의 옆으로 다리가 긴 스툴을 두어 ‘인센스 홀더’를 올려두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협소한 공간이라 장식장을 사용하기가 어려울 땐, 이렇게 스툴 혹은 의자를 활용하여 꾸미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요.
사진에 보이는 장식장은 기존의 가구를 모두 비워낸 후에 가장 먼저 구매했던 가구인데, 얽힌 사연이 있어요. 요즘 많이 이용되고 있는 중고거래 어플을 보던 중 우연히 이 장식장을 발견했는데, 단번에 ‘이건 꼭 사야한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주변 지인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더라고요. 사진 속에선, 장식장이 아파트 복도 한편에 방치되어 있었거든요.
그런 주변 지인들의 반응을 보자, 더욱더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아마도 보여주고 싶었나 봐요.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큰 가치가 생길 수도 있다는걸요. 그렇게 커피 두 잔 값에 장식장을 구매해왔고,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하며 사용 중이랍니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줬던 지인들 역시, 동일한 것이 맞냐며 감탄합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가치란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부여하는 것이라는걸요. 그건 ‘나’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 사진은 밤에 찍은 거실의 모습이에요.
공간에 TV가 없기 때문에 연주곡을 틀어놓거나, 주말이면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두곤 해요. 이사를 결심하며 TV가 없으면 허전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TV가 없는 덕에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후회하지 않아요.
이곳에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다 보면 오래전 처음으로 인테리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떠오르곤 해요.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들이 지금은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거든요.
거실 – 다이닝 공간
쉽게 구매를 할 수 없는 가구들이 있어요. 기존 옵션 냉장고가 그렇죠. 멀쩡하기 때문에 바꿀 필요가 없지만 어딘가 아쉬운 모습이에요. 그런 가구들은 다른 가구들과 섞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냉장고의 주변에도 소품들을 배치해서, 옵션 가구도 공간 안에 섞일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냉장고 앞쪽으로는 다이닝 공간이 있어요. 여기는 테이블은 식사를 하는 공간으로도, 글을 쓰는 공간으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는 스탠드와 탁상시계 등을 올려두고, 병이 예쁜 향초와 화병을 두어 꾸몄어요.
더 자세히 보여드릴게요. 색감이 다채로운데, 그건 벽에 걸린 포스터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원색 위주로 이루어져 있는 포스터와 반대로 테이블보는 편안한 색감의 하늘색 체크무늬를 사용했어요. 방수도 되는 제품인데, 음식물을 흘려도 걱정할 필요 없이 한 번에 쓱 닦아 낼 수 있어 좋아요.
거실 – 타자기가 있는 곳
여기는 거실 한 켠의 특별한 공간, ‘타자기가 있는 곳’이에요. 침실로 들어가는 문 옆쪽에 러그를 깔아 작게 공간을 분리하고 타자기가 올려진 테이블과 투명 의자, 그리고 식물을 두어 거실에 특별한 장소를 마련했답니다.
21세기에 타자기라니. 어떻게 보면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인 제가 처음으로 타자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건, ‘누르는 순간 종이에 찍혀버리는 점’을 보고 나서부터였어요. 손쉽게 연락을 하고 화면을 눌러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 된 요즘, 조금은 느려도 또 서툴러도 정성을 더하고 진심을 다해 한 글자 한 글자 점을 찍는다면 그 자체로 멋진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이건 제가 타자기로 눌러 적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 일부예요. 왠지 모르게 타자기 글자로 남기고 싶더라고요. : )
침실
침실로 들어가 볼게요. 저는 특이하게 침실의 문을 커튼으로 대체했어요. 이렇게 하니까 거실과 침실이 더 넓어 보여서 좋아요.
침실로 들어갔을 때의 모습이에요. 오래전부터 블라인드와 커튼을 함께 사용하고 싶어 했는데, 해놓으니까 역시나 잘 어울리더라고요. 커튼은 압축봉을 이용해 달았어요. 공간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 블라인드를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커튼을 설치함으로써 공간 안에 두 가지의 매력을 집어넣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하얀색 블라인드와 파스텔 톤의 연두색 체크 커튼을 함께 두니까 방이 훨씬 환해 보여요.
커튼에 어울리게, 침구는 밝고 기분이 좋아지는 색감으로 꾸며보았어요. 러그와 식물까지 합쳐지니, 어딘가 휴양지처럼 평화로운 분위기가 납니다.
저는 입지 않는 옷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정리를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새로운 옷을 살 때면 무채색 계열의 옷들로 구매해 한철이 지나면 옷을 입지 않는 일을 최소화했어요. 이런 소비와 정리를 반복하다 보니 하나의 옷장으로도 사계절의 옷들을 모두 보관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사진은 제 모든 옷을 담고 있는, 여닫이문의 옷장이에요.
침실 한 쪽에는 행거와 거울을 함께 비치해두었어요. 불필요하게 부피를 차지하지 않고 간단히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활용력도 높고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아요.
주방
주방에서 제가 크게 바꾼 건 두 가지예요. 흰색이었던 블라인드를 베이지 색상으로 바꾼 것과 커튼으로 선반을 가려 깔끔함을 더한 것. 그 후 사진과 식물을 더해 주방을 생기 있게 꾸몄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느낀 건, 주방 시트지는 영구적이지 않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교체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물이 닿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시트지가 뜨는 현상이 발생하거든요.
주방의 한 쪽에는 작은 세탁기와 수납장을 두었어요. 기존 옵션으로 있던 큰 크기의 세탁기를 빼고, 들여온 가전이랍니다. 덕분에 이전보다 공간이 남아, 수납장을 두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협소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기존 옵션으로 있던 큰 크기의 세탁기를 빼고, 작은 세탁기를 구매해 부엌 한 쪽에 두었어요. 덕분에 공간이 남아, 수납장을 두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관
어느새 집들이의 마지막이네요. 집들이의 마지막 공간으로는 집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공간인 ‘현관’을 택해보았습니다.
눈에 띄는 현관 인테리어는 달력과 소품들이에요. (사진첩에 저장된 사진을 사용하다 보니, 2월의 달력이 보이네요. 지금이 5월이니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30살의 나이에 독일 고급 자동차를 탄다면
5년 정도 자랑할 수 있지만,
30살의 나이에 마라톤 풀코스를 나갔던 경험은
죽을 때까지 자랑할 수 있어요.
사진 속 가운데 있는 메달은 저 말을 듣고 마라톤 풀코스에 나가서 받았던 거예요. 메달과 대회의 추억으로 저는 이따금씩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마라톤 경험을 이야기하곤 한답니다.
메달의 옆으로는 타자기로 직접 쓴 글귀를 붙여두었어요. 좋아하는 영화 대사예요. 매일 집을 나서며 메달을 보고, 쓰인 글을 읽어요. 그리고 늘 똑같은 다짐을 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아가자고요.
집들이를 마치며 –
우리는 공간 안에 무엇을 ‘축적’하고 있을까요.
저는 제 공간에 수많은 경험들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이 모여 또 한 번 홀로 여행을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기도 하고,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라 여기던 일들을 가능함의 일부로 이끌어내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죠.
이런 일들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제 바람대로 원하는 공간으로 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다음 온라인 집들이를 발행한다면, 또 한 번 공간의 변화를 이끌어냈을지 아니면 새로운 공간에서의 시작을 담았을지 알 수 없겠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라도 다시 집들이를 쓰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2년 전 다녀왔던 스위스의 블라우제 호수 사진을 남기며 글을 마칩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침체되고 지역 간의 이동조차 조심스러워졌지만, 모두가 여행을 자유롭게 다시 떠날 날을 기다리며 지금을 잘 극복하면 좋겠어요.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따뜻함이 가득하기를 바라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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