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공공 정신건강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jjingbo라고 합니다. 밖에서는 임상심리사로, 집에서는 오래된 한옥의 안주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데요. 10년째 한결 같은 모습으로 제 곁을 지킨 남편과 함께 사람, 사물, 자연 사이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있습니다.
1930년생, 선유재(仙遊齋)
저희 집은 서울시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 35평 한옥, 선유재(仙遊齋)입니다. 1930년 대에 지어진 한옥이라 오래된 목재가 주는 웅장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서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진 인왕산이, 남쪽으로 겹겹이 쌓인 한옥 기와 능선과 남산타워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선유재는 오래된 만큼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용도에 따라 집, 사무실, 갤러리 다양하게 활용되었고, 그때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습니다. 그것 또한 이 집의 매력으로 느껴져, 그 흔적을 유지하며 저희 부부의 추억도 더하며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입주 전 전체 시공을 결심했고, 사랑채, 화장실, 가구 제작 등에 부가세 제외하고 4,000만 원 정도 지출했습니다.
인테리어 컨셉은?
이 집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해서, 선유재를 선유재답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건축소 소장님께 오래된 한옥의 창호, 목재, 기와를 살려 지금의 분위기를 유지해 줄 것과 차경의 미를 살려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집 안으로 들여와 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한옥의 요소를 유지하면서 고태미와 현태미가 조화로운 집이 완성되었습니다.
한옥의 거실, 대청과 사랑채
보통 아파트나 주택들은 거실이 메인 공간이죠. 저희 집에는 거실 역할을 하는 공간이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옥의 대청이고, 다른 곳은 사랑채입니다.
다실로 꾸민 고즈넉한 대청
먼저 한옥의 대청은 블랙 컨셉의 찻자리입니다. 인테리어 때는 나비장만 두고 비워둔 공간이었는데,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차로 이어지며 저희 부부의 감성을 담아 다실로 꾸몄습니다.
경매로 나온 떡판을 직접 샌딩하고 오일을 칠해 만든 다도 테이블과 남편에게 제가 생일 선물로 사준 펜던트 조명 덕분에 더 애정 가득한 공간입니다.
인왕산을 그림 삼아, 사랑채
BEFORE
AFTER
두 번째 거실인 사랑채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기둥을 중심으로 2개의 공간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BEFORE
AFTER
바깥쪽 공간에는 제작 직접 디자인한 합판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합판 싱크대 상판은 스테인리스로 제작하였고 끝 쪽은 라운딩 처리하여 테이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랑채 안쪽은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입니다. 퇴근 후 소파에 발끝을 맞대고 앉아 간식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거나 노래를 듣고, 나주반에 음식을 차려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
‘소반은 일상생활에서 편안하게 사용했던 전통가구이니 작품이 아니라 생활가구로 사용될 때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한상민 작가님의 철학이 우리 부부의 가치와 맞아 나주반 제작을 요청드렸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사랑채에 잘 어울리면서도 실용적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서까래 아래서 요리하는 부엌
다음으로 보여드릴 공간은 부엌입니다. 저희 집 메인 부엌 서쪽에는 오래된 한옥 창문들이 있어, 지는 해가 주방 끝까지 깊게 들어옵니다.
또 이전에 살던 분이 설치한 원목 싱크대가 예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작은 규모이지만 부엌살림이 별로 없어서 충분히 수납하고도 여유 공간이 있습니다. 이사 올 당시에는 그릇 욕심이 없었지만 오픈 원목 선반 때문에 예쁜 그릇들을 1~2개씩 구입하고 있고요.
부엌과 이어진 다이닝 공간입니다. 이사 직후에는 큰 테이블로 다이닝 공간을 꾸며놓고 손님들을 초대해 시간을 보냈으나, 1년이 지나니 남편과 둘이 사는 집에 너무 큰 테이블이 불필요하게 느껴져 작은 테이블을 마당을 향해 배치해 놓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고 예쁜 그릇에 담아 상차림을 내어놓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인테리어를 한 다면 주방과 다이닝이 메인이 되는 공간을 꾸며보고 싶습니다.
창호지의 매력을 살린 안방
보통의 아파트보다 방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안방은 침대와 한식 붙박이장으로 간결하게 꾸몄습니다. 한식 붙박이장은 저희 생활패턴에 맞춰 인테리어 때 함께 설치했습니다. 안방 창호와 동일하게 한지로 도배한 붙박이장은 좁은 공간을 넓게 느껴지게 해줍니다.
저희 집 침실은 남쪽을 향해 있지만 창가에 커튼이 없습니다. 이전 아파트에서는 암막 커튼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선유재에는 밤이 되면 달빛 외에 우리를 방해하는 빛이 없어서인지 커튼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한지의 빛 차단율이 좋아, 아침 햇살이 은은하게 들어오면 자연스레 눈이 떠지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현대판 선비의 방, 서재
다음으로 보여드릴 공간은 서재입니다. 처음 인테리어 때는 손님방으로 꾸몄던 공간인데, 재택근무하는 남편을 위한 서재로 탈바꿈했습니다. 모니터와 고가구, 민화로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배치해 보았습니다. 현대판 선비의 방 같은 느낌이 드네요.
우리 집 여행지, 툇마루
한옥의 또 다른 매력은 툇마루 같습니다. 날 좋은 오후, 마당에서 남편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여행 온 기분이 듭니다.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요즘 같은 시기에 마스크를 벗고 내 집 안에서 자유롭게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진정한 행복이구나’ 싶습니다.
노천탕이 된 야외 화장실
BEFORE
AFTER
저희 집에는 화장실이 2개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화장실은 마당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야외 화장실입니다. 이전에 계시던 분은 세탁실 겸 동네 고양이들의 화장실로 사용하셨던 공간인데, 목욕을 좋아하는 남편의 로망을 실현해 주기 위해 도심 속 노천탕을 컨셉으로 인테리어를 진행했습니다.
삐걱이는 낡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창밖의 기와와 대추나무를 보며 반신욕을 즐길 수 있는 욕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뷰 맛집 하늘정원, 옥상
선유재의 또 다른 매력은 한옥이지만 옥상이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 봄에는 우리 집 옥상으로 소풍을 다녀왔는데요.
평상만 하나 있는 옥상이지만 그 어느 전망대보다 멋진 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 소개를 마치며
SNS를 통해 선유재에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생각보다 제 나이 또래의 많은 분들이 한옥에 관심을 가지고 연락을 주십니다. 물론 오래된 한옥을 가꾸고 유지하는 삶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매일 새로운 낭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로망을 실현해 보시라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특히나 북촌 한옥마을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동네라는 점 같습니다. 이런 오래된 아름다움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젊은 이웃들이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집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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