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Klee0807라고 합니다. 사진은 7살 박담(우), 2살 이복동(좌)이라는 고양이들입니다. 둘의 성격을 단순히 표현하면 담은 무척 고양이 같고, 복동은 고양이답지 않게 강아지 같습니다. 담이 성이 박 씨고, 복동의 성이 이씨인 건 그저 이름과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집에 대한 로망이 있나요?
3년 전 우연히 연식이 오래된 연립주택을 개조해 사는 커플에 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어요. 샛노란 은행나무가 집안으로 반사되는 동남향의 집이었는데, 그렇게 멋진 광경은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본 것 같았어요. ‘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어요. 그때 처음 ‘집을 사야겠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집을 사서 완전히 뜯어고치고 살고 싶다’ 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한국에선 집을 사지 않고는 그런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북한산을 품은 우리 집
집에 대한 로망을 이루며 살게 된 건 지금의 집을 만나게 된 이후예요. 제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약 40년 된 28평 주택입니다. 방 4개, 욕실 1개, 주방 1개로 이루어진 공간입니다.
저는 서울 도심에서 나무가 보이는 벽돌로 지은 집에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2년간 집을 구하러 다녔어요. 그 덕분에 저희 동네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 창밖으로 북한산과 북악산이 두루 보인답니다. 북한산 둘레길을 접하고 있는 저희 집은 도시 소음이 없어요. 새소리와 가끔 들리는 이웃 절에서 들리는 목탁 소리가 전부예요. 창밖으로 계절의 변화가 고스란히 전해져 지겨울 틈이 없습니다. 시간의 속도를 눈으로 읽는 주택이랄까요.
인테리어 컨셉은?
저는 정형화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아요. 인테리어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모르는 경향성이야 있겠지만, 특별히 고집하거나 추구하는 스타일 같은 건 없어요. 퀼트를 좋아하는데, 아마도 그 비정형성과 도무지 무엇이 도출될지 모르는 그 어딘가의 아름다움, 그러나 그 적재적소의 배치를 사랑하는 거 같아요.
굳이 선호하는 인테리어 소재를 꼽자면 ‘나무’인 듯합니다. 나무결과 나무의 ‘색’이 주는 편안함을 사랑합니다. 집안 곳곳 벽면이나 천장도 나무 소재로 마감을 했고요.
그리고 전 공간을 색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보시다시피 저희 집에는 큰 가구를 중심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색이 있어요. 응접실은 레드, 제 방은 블루, 거실은 블랙 & 옐로 이런 식이죠. 그래서 되도록 집안의 바탕색은 가장 단조로운 색인 화이트 계열과 연한 우드 계열을 썼고요. 색을 자유롭게 쓰고 싶었거든요.
프라이버시 보호! 현관
원래 이 집은 현관을 열면 거실이라 부를 만한 공간이 완전히 드러났어요. 그 덕분에 이 집을 처음 찾은 날 문을 열자마자 병풍처럼 펼쳐진 단풍 뷰에 혼이 나갔죠. 그러나 동시에 집안의 중심이 한눈에 파악돼 공간에 대한 궁금증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했어요.
저는 그 뒤로 쭉 이 집이 호기심을 품을 있는 구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 현관문을 열어도, 집 안에 있는 사람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 않는 그런 구간이요. 고민 끝에 현관문을 마주 보는 곳에 구조물을 세웠고 그 안에 세탁 공간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현관을 열면 절묘하게 집 내부가 보이지 않게, 완벽한 중문의 역할을 하고 있죠.
책과 원목으로 채운 거실
현관을 통해 들어온 저희 집 거실 공간은 전 집주인이 침실로 사용하던 공간이었습니다. 넓은 침실은 선호하지 않아, 침실 공간을 거실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여느 집 거실과 조금 다르게 집안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그 위치성 때문인지 저는 이 공간이 아주 아늑하게 느껴져요.
천장은 너도밤나무 합판으로 마감했어요. 바닥, 천장, 벽면, 문짝 등 합판을 교차적으로 사용해 집안 분위기에 통일감을 주는 한편 배치의 다변화로 고루함을 덜어내려고 했습니다. 바닥이 화이트 톤의 밝은 색 계열이라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집안 무드에 우드를 적절하게 배치해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 했지요.
거실의 한 벽면은 철제 선반으로 채웠습니다. 국내에도 이미 유명한 철제 선반이죠? 비초에 선반입니다. 사이즈를 재서 영국 본사로부터 직구했습니다.
또 거실의 무게 중심은 아무래도 몸집이 큰 소파에 쏠리는 거 같아요. 그래서 더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 마음에 쏙 드는 것들은 예산을 심하게 뛰어넘는 것들이었어요. 하루하루 시름시름 앓던 중에 이 소파를 만났어요. 목 받침이 없어 다소 불편한 듯도 하지만, 목이 높은 소파는 미관을 해친다고 여겨 현재까지 만족하며 쓰고 있어요. 블랙 소파는 의외로 공간을 안정감 있게 만들어주었고, 여러 가지 포인트 컬러 소품을 곁들이면 팝아트적인 무드를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거 같아요.
천장 등은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태생의 줄리어스 티오도르 칼마(J.T.Kalmar)가 1970년대에 생산한 아이스드 글라스(Iced glass) 천장 램프랍니다. 고드름이 얼어 있는 듯한 형상인데, 저는 불을 켰을 때보다 오후의 자연광이 투과된 형상을 보는 게 더 좋더라고요. 참고로 두꺼운 12개의 유리 피스가 두 겹으로 둘려 있어 아주 무겁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큰맘 먹고 ‘영혼을 위한 치킨 수프’같은 소울 가구를 수집해 나가자 마음먹었어요. 올해 저의 치킨 수프 같은 소울 가구는 거실에 놓은 사이드보드입니다. 50년 대생 이태리 어르신인데요.
이른바 북유럽 가구에 담백한 미가 있다면, 이태리 가구는 역시 섬세한 디테일에 그 강점이 있는 거 같아요. 반세기도 더 전에 만들어진 캐비닛이라 하기에 퍼덕퍼덕 살아 숨 쉬는 디자인이 감동적입니다. 질감과 색감을 더해 실제로 접하면 심히 아름답습니다.
저는 집안의 통로들을 좋아합니다. 공간과 공간을 연결시켜주는 통로 말이죠. 통로가 가지는 개방적인 속성이 좋아요. 그 개방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주방과 응접실 사이, 응접실과 거실 사이에는 문을 달지 않았어요. 그 덕분에 공간들은 물질적으로도 상호 확장되죠.
숲을 품은 레드톤 다이닝룸 겸 응접실
저는 공간마다 색을 입히는 일에 매우 공을 들이는 편이에요. 다이닝룸의 테마는 보시다시피 레드예요. 카펫과 의자 시트, 조명의 테두리 모두 붉은 계열이죠.
다이닝룸을 겸한 저희 집 응접실의 경우, 독일에서 조달한 60년대 빈티지 조명을 먼저 구매한 뒤 다른 가구들과 소품들을 결정했답니다. 조명에 둘러진 빨간색 테두리가 그 공간의 색이 되었죠. 응접실에 붉은색 카펫을 깔게 된 것도 모두 그 빨간색 테두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식탁은 2미터 20센티까지 확장되는 떡갈나무 집성목 소재로 골랐습니다.
또 응접실은 창밖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름과 초가을까지 짙은 초록색에 질식될 만큼, 창밖은 울창합니다.
응접실에 머무를 때면 늘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돼요. 집 앞 계곡물이 내려가는 소리랄지, 바람이 혹은 비가 나뭇잎 사이를 스치거나 헤매는 소리 같은 거요. 오랫동안 서울에 산 사람에게 실로 생경하고 놀라운 경험입니다. 진정으로 정신이 쉴 수 있는 공간이라, 밖에 있을 때면 늘 귀가하고 싶습니다.
자꾸만 머물고 싶은 주방
응접실과 주방에도 문을 달지 않았어요. 응접실과 일직선상에 있는 주방을 둔 덕분에 때로는 응접실이 확장된 다이닝룸의 기능을 한답니다. 응접실의 큰 창과 주방의 작은 창의 빛이 만나서 집안이 더 밝은 느낌이고, 공간의 연결도 자연스럽죠. 빛은 집의 무드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해요. 인테리어를 하는 내내 빛을 어디서 끌어올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빛의 동선을 만드는 과정이 아주 즐거웠던 거 같아요.
오랜 자취 생활로 세간도 얼마 없고, 음식을 자주 해 먹는 편도 아니라, 주방을 넓게 두고 건더기 없는 곰국 같은 허전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집의 가장 쓸모없어 보였던 공간을 주방으로 만들었어요. 이제 이 집의 가장 작은 공간이자 가장 기능적인 공간이 되었죠. 반짝거리는 물건들이 많아, 저는 하릴없이 이 공간을 서성일 때가 많답니다.
작은 포인트로 채운 침실
저희 집에는 침실이 두 개예요. 그중 하나가 지금 보시는 제 방입니다. 이 방에는 침대와 빈티지 협탁 의자 하나가 전부입니다. 침실 등은 지리산 실상사 앞에 가면 살 수 있어요.
또 침실 문에는 후크를 하나 달아서 잠옷 걸이로 쓰고 있어요. 후크는 독일에서 직구한 빈티지 제품이에요. 몇 달러 안 했던 거 같아요.
실용적인 비밀의 방, 드레스룸
가벽 세우는 중…
저는 이 집의 모든 공간이 자기 쓰임에 충실하길 바랐어요. 다소 길게 빠진 기존의 주방을 분할해 2/3 공간을 서재로, 나머지 1/3을 드레스룸으로 쓰기로 했어요. 가벽을 세우고 문을 달아 실현시킨 공간이죠.
물론 드레스룸을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아니었어요. 공사 시작 하루 이틀을 앞두고 설계를 변경했죠. 그럴싸한 붙박이 옷장을 짜 넣을 예산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집안 무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몸집 큰 가구를 가격만 고려해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이디어가 찾아왔어요. ‘작더라도 드레스룸을 만들자. 그것이 경제적이고 집안의 미감을 해치지 않는 유일한 선택지다’, 그 작은 드레스룸을 탄생시킨 덕분에 저는 입지 않은 옷들을 청산했고, 지금은 손님들이 오면 구질구질한 건 모조리 넣어두는 창고형 공간이 되었답니다. 자기 쓸모의 200%를 해내고 있는 비밀의 방이라 자부합니다.
가을 감성을 담은 서재
서재는 이 집에서 가장 꾸밈이 없는 공간이에요. 본래 주방이던 공간을 서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ㄱ자 싱크대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책상을 배치했어요.
서재에서 보이는 창이 접하고 있는 중정의 가을입니다. 나뭇잎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시시각각 감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공간입니다. 집을 찾아 헤매다 이곳을 우연히 발견한 어느 여름날, 낡은 붉은 벽돌 사이로 잘 가꿔진 중정의 모습을 발견하고 환희에 차 가쁘게 몰아쉬던 호흡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리모델링으로 만든 건식 욕실
욕실은 공사를 하면서 건식으로 바꿨답니다. 천장 마감은 너도밤나무 합판으로 했고, 바닥은 응접실과 같은 타일로 마감하였습니다. 습기가 차는 욕실 천장을 합판으로 마감하는 도전적인 시도를 했는데, 만족스럽습니다. 다음번에 인테리어를 한다고 해도 저는 무조건 건식을 선호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희 집 화장실에서는 성별 무관하게 모두 앉아서 용변을 보는 것이 원칙이에요. 건식 욕실의 제1 조건이기도 하고요. 변기는 물탱크 없는 직수형 양변기예요. 사용해 보니 다소 실망스러운 점이 없지 않아 추천하진 않아요.
이건 독일에서 직구한 빈티지 후크예요. 침실에 달린 것과 동일한 거예요. 문짝에 달아두니 유용하게 쓰이는 듯해요.
분수를 모르는 집-
제가 오래된 연립주택을 대출 내서 산다고 했을 때 제 주변에서도 다소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어요. ‘돈이 되는 집’을 사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죠. 살 집을 구하면서 투자자의 마인드도 겸비해야 하는 게 현실인데, 지인들 눈에 자산 가치가 커 보이지 않는 집을 사려는 제가 너무 무모해 보였던 거죠. 이 집에 ‘분수를 모르는 집’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연유도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하지만 제게 집은 그 본래의 전통적인 의미인 육체와 정신의 재생산이 이뤄지고, 또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인테리어에 신경 쓰게 되는데 이건 결심해서 하는 일이라기 보다, 일상을 저답게 영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위에 가까운 거 같습니다. 저는 오늘도 기꺼이 분수를 모르는 삶, 아니 분수를 모르는 집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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